CES 2026, AI 거품론에 답하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의 공기가 달라졌다.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한때 주인공이었던 화려한 TV 디스플레이와 기발한 가전제품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엔비디아의 AI 칩, 현대차의 로봇, 캐터필러의 굴착기와 소형 원자로(SMR)가 들어섰다. 더이상 “올해는 어떤 신제품이 나왔나”라는 질문만으로는 이 거대한 흐름을 요약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현대·삼성·LG가 어떤 제품을 선보였나”, “어떤 기업에 투자해야 하나”에 대부분의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CES 2026에서 읽어야 할 메시지는 따로 있었다. 지난 1년 내내 테크 업계를 유령처럼 따라다녔던 ‘AI 거품론’에 대해 업계가 내놓은 집단적인 응답 말이다.
두 가지의 불편한 질문
2025년은 AI 거품론의 해였다.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는 동안, 시장에서는 두 가지 불편한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첫째 질문은 AI가 모두가 환호하는 성능을 넘어 실질적인 이익을 만들 수 있는지다. MIT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다론 아세모글루는 “과대평가된 모델에 필요 이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MIT 미디어랩 보고서는 생성 AI에 투자한 기업의 95%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OpenAI CEO 샘 올트먼조차 “투자자들이 AI에 과도하게 흥분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예스”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두번째 질문은 폭증하는 AI 인프라 수요를 물리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가였다. 컨설팅 기업 베인은 현재의 AI 인프라 투자를 정당화하려면 2030년까지 연간 2조 달러의 AI 매출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이는 아마존,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엔비디아의 2024년 매출을 합친 것보다 많다. 데이터센터는 전력을 먹어치우고, 전력은 부지와 송전망을 필요로 하고, 이 모든 것은 물리적 세계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쇼’가 아닌 ‘작업’으로: Physical AI의 등장
CES 2026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였다. 1월 5일, 공개 무대에서 스스로 일어나 걸어 다니고, 관객에게 손을 흔들고, 머리를 부엉이처럼 돌리는 아틀라스의 모습은 수많은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CES에서 아틀라스가 주목받은 이유는 퍼포먼스 때문은 아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CEO 로버트 플레이터는 “우리는 10년 전에 유튜브용 파쿠르를 했다. 어려운 건 실제로 유용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화려한 쇼(show)‘를 끝내고 ‘실제로 필요한 작업(work)‘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다.
아틀라스는 2028년부터 현대자동차 조지아 공장에서 부품 시퀀싱 작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2030년까지는 조립 등 더 복잡한 작업으로 확대된다. 현대는 연간 3만 대 규모의 로봇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며, 2026년 생산분은 이미 전량 배치가 확정됐다.
NVIDIA CEO 젠슨 황은 기조연설에서 이 흐름을 ‘Physical AI’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이제 AI가 화면 속 챗봇에 머물지 않고, 센서와 카메라와 하드웨어를 통해 물리적 세계에서 직접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선언이었다. “CES 2025가 AI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쇼케이스였다면, CES 2026은 AI의 일자리 면접이었다”는 한 업계 분석가의 평가는 그래서 정확하다.
AI 시대의 열쇠는 물리적 세계에 있다
AI는 소프트웨어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를 짓고, 전력을 공급하고, 냉각 시스템을 가동하는 물리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AI 인프라 수요가 폭증하며 물리적 병목에 부딪히고 있는 지금, 인프라를 실제로 건설할 수 있는 기업들이 테크 생태계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CES 2026 기조연설 무대에 중장비 기업 캐터필러(Caterpillar)가 올랐다. 이 기업은 불도저와 굴착기를 만드는데, 데이터센터 건설과 광산 채굴(AI 반도체에 필요한 희토류), 전력 인프라 구축의 핵심 플레이어다. 캐터필러 CEO 조 크리드는 자신들의 장비와 전력 시스템을 “디지털 경제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레이어”로 포지셔닝하며 ‘물리적 세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외에도 CES 2026 전시장 곳곳에는 BMW, 존 디어(John Deere), 두산밥캣(Doosan Bobcat)의 무인 건설 장비들과 BMW의 V2G(차량-전력망 통합) 기술, 소형 모듈 원자로(SMR), 핵융합 기술이 자리를 차지했다. 모두 AI 인프라를 위한 다양하고 과감한 시도들이다. 소비자 전자제품 박람회에서 중장비와 소형 원자로가 주목받는 풍경. AI의 물리적 기반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요구가 많은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거품론에 대한 CES의 답변
그렇다면 CES 2026은 AI 거품론의 두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첫 번째 질문, AI 기술의 수익성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현대의 아틀라스가 2028년 공장에 투입되어야 비로소 인건비 대비 효율의 성적표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2026년 생산분이 이미 완판되었다는 사실은 시장이 AI 로봇의 경제성에 베팅을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AI 기술 그 자체가 돈이 될지는 몰라도, AI 기술로 만든 로봇으로 값비싼 노동력을 대체하는 일은 손익 계산을 명확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인 물리적 제약에 대한 답은 훨씬 선명하다. CES에서 캐터필러와 BMW의 등장은 우연이 아니다. AI는 더 이상 구름 위(Cloud)의 존재가 아니라, 땅을 파고 전력을 끌어와야 하는 물리적 과제임을 업계는 인정했다. 소형 원자로(SMR)와 자율 건설 장비는 그 병목을 뚫기 위한 절박한 시도다. 완벽하진 않지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CES 2026이 AI 거품론을 완전히 불식시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테크 업계가 무한한 확장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 물리적 한계를 인정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거품은 꺼질 수 있다. 하지만 한번 물리적 세계에 발을 들인 기술은 쉽게 되돌아가지 않는다. 어쩌면 거품론의 진짜 질문은 “AI가 과대평가됐는가”가 아니라 “AI가 화면 밖으로 나올 수 있는가”였는지도 모른다. CES 2026은 AI가 ‘쇼’를 끝내고 ‘현장’으로 첫 출근을 한 순간이었다.